시인 정해룡

한때, 통영의 류태수 사진작가와 같이 일을 한적이 있다. 3권의 책을 의뢰받아 나는 집필을 했고 류작가는 거기에 필요하고 합당한 사진을 촬영해 설명과 이해를 곁들였다. 그렇게 호흡이 맞아 ‘예향 통영’, ‘고성의 겉살과 속살을 찾아서’. ‘나무가 들려주는 고성 이야기’를 발간하게 되었다. 류작가가 내게 제공했던 많은 사진 중에서 유독 한 장의 사진이 너무나 감동적이었기에 ‘고성의 겉살과 속살을 찾아서’의 책 겉표지에도 사용했다.

나는 간혹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 사진을 꺼내어서 내 영혼을 힐링하는 청량제로 삼는다. 그 사진이 가리키는 곳은 고성의 문수암이 있는 무이산에서 바라본 한려수도, 자란만 바다다.

문수암이나 무이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의 정경은 그야말로 천상의 비경처럼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넋을 잃고 탄복할 정도다.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고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것처럼 남해안의 한려수도, 고성 자란만 바다바라기는 선경이고 절창이다.

나는 문수암과 무이산을 수도 없이 올랐다.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바다는 내게 큰 위안이었다. 거듭된 실망과 좌절 속에서 다시 시작하라고 등을 토닥여 주던 자상한 어머니의 따뜻한 격려였다.

어떤 날에는 멀리 서북 방향의 지리산도 선명했으니 이곳이야말로 해탈이요, 지극한 참선의 경지였다. 삼국시대부터 해동의 명승지로써 화랑들의 수련장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런 이유로 무이산武夷山이라 하였을까, 무이산을 불가에서는 청량산淸凉山이라고도 한다.

옛 문헌에도 문수암文殊菴에 오를 때의 느낌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일출 때 동남쪽을 보면 바다가 눈앞에 끝없이 펼쳐지고 섬에서 고기잡이 불빛이 절경을 이룬다. 영남 땅 아래에서 제일가는 기이한 광경이라 이른다〔上文殊菴 見日出東南 海無邊眼通 島嶼漁火之嶺南下奇觀第一云〕.”─《교남지》

어떤가. 교남지에 기록된 대로 영남 땅 아래에서 제일로 가는 기이한 광경이 아닌가! 사진 오른쪽에 봉긋 솟은 두 봉우리는 좌이산이다. 작고한 김열규 교수도 이러한 풍광에 매료되어 서울 생활에 지친 영혼과 육신을 달래고자 좌이산 자락에 둥지를 틀었을 것이다.

사진 왼쪽 끄트머리 부분에 마치 하늘을 찔러보려는 듯이 땀띠처럼 솟구친 봉우리는 통영의 미륵산이다. 예전에 위급할 때 미륵산에서 피운 봉홧불은 도산면의 우산을 거쳐 이곳 좌이산 봉수대에 전달이 되면 한 갈래는 진주(삼천포) 각산으로, 또 한 갈래는 천왕점(고성 대가면의 천왕산에 있는 봉수대)으로 봉홧불을 전했다. 좌이산에는 봉수대가 옛 그대로 복원돼 있다.

좌이산 너머로는 사량도 웃섬과 아랫섬이, 수우도와 함께 띠처럼 드러누웠고 웃섬 그 너머로는 욕지도와 두미도가, 사진 중앙에는 국도가 숨어있는 듯하다.

나는 한때 직장의 배로 주말이면 섬의 수석(壽石)에 탐닉하여 욕지의 초도, 우도, 적도, 삼천포 신수도, 등지로 물개처럼 쏘다닌 적 있었다. 수석도 수석이었지만 섬 그 자체가 시적(詩的)이었다.

그러기에 지금도 류작가가 제공해 준 사진 한 장을 바라보면서 탐석에 열중했던 이들 섬의 몽돌 해안을 떠올리고 쏴아쏴아 불어오던 시원한 해풍과 파도 소리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리워 하면서 세상사 번뇌를 씻는 것이다. 산행 후 흘린 땀을 깨반하게 씻어 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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