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 굴 박신장 180여 곳 운영, 하루 최대 40~50명 박신 작업 열중
30~70대까지 박신공 직업 자부심 “두 계절 통영서만 가능한 직업”

용남면 한 어촌마을의 굴 박신장이 시끌벅적하다.

박신장 주변에는 굴 껍데기들이 가득 쌓여 있고, 박신장에는 40~50명의 박신공들이 앞치마에 장갑을 야무지게 끼고 굴 껍데기 분리작업에 열중이다.

세 겹의 장갑을 끼고 오른손에는 굴 까기 전용 조그마한 칼을 쥔 채 쉼 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껍데기에서 분리 해낸 알굴은 크기에 따라 두 개의 통에 나눠 담겨진다.

초보 박신공들부터 선수로 불리는 박신공까지, 굴을 까는 만큼 품삯을 가져가기에 이들에게 시간은 금이다.

또한 굴 박신공들은 굴의 속살이 다치지 않도록 섬세함은 기본, 신속함은 덤으로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박신 작업에 대부분 여공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박신 작업 자체를 손쉬운 작업이라고 착각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그런 오해를 곧바로 불식시킨 사람은 올해 처음으로 박신장을 찾았다는 남공 김씨다.

김씨는 “굴 까는 걸 진짜 쉽게 생각했는데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다. 숙련되지 않은 분들은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손가락부터 어깨, 허리, 다리까지 안 아픈 곳이 없다. 쉬울 거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정말 큰 코 다쳤다”고 말했다.

“1년의 절반 박신공으로, 자부심 느껴”

새벽 4시에 작업을 시작해 오후 4시, 꼬박 12시간을 서서 일하는 일이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박신공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또 박신공이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가득하다.

1년 중 절반 정도를 굴 박신공이라는 직업을 가지는 이들은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처음에는 다들 쉽게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나오지만 하루도 채 넘기지 못하고 가는 이들도 여럿이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길게는 수십 년을 박신 작업을 해온 이들에게는 박신공이라는 직업은 직업 그 이상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올해는 예년보다 작황이 좋지 않다. 지난여름 장마와 무더위에 양식장이 집단 폐사하는 일이 발생했고, 그 여파가 올해 굴 작황으로까지 이어졌다.

통영토박이 전두리 여공은 “올해로 박신장 나온 지 5년 됐다. 한 해 한 해 하면서 참 힘든 일이라는 것을 많이 느낀다. 특히 굴 까면서 하루 종일 서있는 바람에 허리, 무릎이 좋지 않고, 팔목, 어깨, 팔꿈치도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 사실상 수입의 절반은 병원비로 다 나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작업장을 나오는 이유는 단 하나다. 환갑을 한참 넘은 나이에 무엇인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또 박신공이란 직업은 통영에서만 가질 수 있는 직업이지 않나, 힘들어도 그만큼 보람을 느낀다”고 웃었다.

박신공들의 하루 작업은 kg당 많게는 3천원선에서 책정된다. 1인 평균 40~50kg, 고수들은 100kg에 육박하는 작업량을 자랑하기도 한다.

수산1번지 통영의 굴 산업은 통영 경제의 대표적인 축이다. 올해는 5천여 명의 굴 박신공들의 일자리 창출을 도모했고 지역경제유발 효과로 3천억원을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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