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장인은 오로지 만들 줄 만 아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셨다”

국가무형문화재 제 10호 나전장, 송방웅 선생이 향년 81세로 지난 20일 별세했다.

1940년 통영에서 태어나 선친인 송주안 선생의 말씀을 받들어 62년간 나전장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송방웅 선생.

열아홉이던 청년이 나이 지긋한 명예보유자가 될 때까지, 선생은 스스로를 ‘자개쟁이’라 칭할 정도로 겸손한 ‘장인’이었다.

시, 소설을 가까이하던 문학소년 송방웅은 통영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선친에게서 나전칠기를 권유받았다. ‘가업을 이어라’ 아버지의 엄명에 송 선생은 풀솔과 칠칼을 집어들었다. 다른 견습생들에 비하면 비교적 늦은 시작이었다.

아버지 송주안 선생은 늦둥이 아들을 엄하게 가르치며 기술을 익히게 했다. 그렇게 29살, 강산이 변할 때까지 공방에서 모든 걸 쏟아 부은 송 선생에게 선친은 이젠 네 마음대로 작품을 만들어도 되겠다며 그를 인정했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는 곳이라면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닌 송방웅 선생은 다시 10년을 쏟아 부으며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몸속에 흐르는 나전장의 피, 오랜 연마에도 그의 갈증은 여전했다. 끊임없는 노력이 오늘날의 장인, 송방웅 선생을 만들어낸 것이다.

62년간 외길을 걸어온 송방웅 선생은 공예대전에서의 무수한 수상과 보관문화훈장을 수여받을 때도 도무지 잘난체를 몰랐다. 으스레를 떨어도 될 경력과 실력에도 익어가는 벼처럼 고개를 숙였다.

2013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을 당시 송방웅 선생은 “제가 과연 이 과분한 문화훈장을 받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제 인생, 이만하면 화려한 길이었지만 오늘 따라 기쁘기도, 허무하기도 하다. 아버지가 몹시 생각난다”며 선친인 송주안 선생을 그리워했다.

언젠가 송 선생이 장인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물었을 때 선친은 “진정한 장인은 물건 팔 줄을 잘 모른다. 오로지 만들 줄만 아는 사람”이라며 답했다. 선친은 송 선생에게 기술과 함께 장인이 가져야 할 끈질김과 겸손함을 물려준 것이다.

1990년 나전장 보유자 지정과 더불어 지난 3월 선친의 뒤를 이어 국가무형문화재 제 10호로 인정받은 송방웅 선생은 노환으로 눈을 감을 때까지 후배 나전장들의 양성과 작품 활동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전수받고 끊임없이 갈구한 나전기술을 고향 통영을 위해, 후배들을 위해 불꽃같이 스스로를 피워온 나전장 송방웅 선생.

통영 공예계의 큰 어르신, 큰 별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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