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도에 경상남도에서는 통영나전칠기의 기술 단절을 우려하여, '경상남도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를 설립했다.

학생 정원은 40명이며 2년제였고 강사진은 당대 최고의 대가들이 맡았다.

옻칠예술가 김성수는 어릴 때부터 옻칠예술에 매력이 유달랐던 터에,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무조건 신나게 뛰어들었다. 그때 나이는 16세였다. 1기생으로 졸업한 후,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된다.

졸업 후, 대학 진학을 유보(留保)하고, 1956년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전임강사로 위촉받는다. 그리하여 옻칠기법·나전(螺鈿)기법 제작실기, 디자인, 제도, 정밀묘사, 공예사 등 광범위한 부분을 담당하면서 때로는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1963년에는 스스로 사임을 하고, 상경하여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 '경상남도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는 충무시(지금의 통영시)로 이관되면서 명칭도 '공예학원'으로 개칭되었다. 학생 모집이 해마다 줄어들다가 결국 폐원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된 것은 시대적인 여건 변화 때문이었다.

한일합방에 이은 한국전쟁 등으로 국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화려했던 전통옻칠예술의 수요가 크게 줄었다.

그러다 다시 회복단계에 채 들어서기도 전에, 질이 나쁜 캐슈(화학칠)가 전통옻칠인양 쏟아지면서, 오히려 옻칠의 흔적은 거의 감추어지는 지경이 되었던 것이다. 이 캐슈도 곧 화학제 부작용 등으로 수요자의 인기에서 밀려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여건 등이 옻칠공예의 역사를 깨는 시기였다. 

김성수는 그런 악몽 속에서도 전통옻칠예술을 살리면서, 발전시키고자, 운명을 걸다시피 하면서 연구에 정력(定力)을 쏟았다.

상경 후, 6개 월 만에 제12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옻칠 「문갑」으로 공예부 최고상인 문교부장관상을 연속 4회 특선의 영광을 안았으며, 이어서 추천작가, 초대작가로 추대되었다.

그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졸업하고, 이어서 홍익대학교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어서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와 학장, 처장을 거쳐 전통문화예술대학원장까지 역임한다. 그 후 중국 청하대학교 미술대학 무한임기의 객좌교수로 초빙되기도 했다.  그 외 미국·중국·베트남 등 외국에서도 더러 초청이 있었다. 

특히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한 튀니지 공예 청에 1년 6개월간 파견 근무를 하면서 반 년 간 파리에서의 창작활동과, 유럽·미국·일본 등 미술계 시찰이 전통 옻칠 예술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도록 자극을 받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 숙명여대에 복귀하고, 학생 지도와 창작에 몰두 하면서, 조선시대를 모태로 한 '목분 상감 기법'을 드디어 창안했던 것이 그런 충격에서 온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전통미를 현대적인 풍토에 맞는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편 대한산업미술가협회 회장으로 재임 하던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실용성과 조형성을 겸비했다는 일본 공예와 비교하기 위하여, 한일국제교류전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베트남과의 교류전도 계속되었다.

한때, 미주 중앙일보 창간 28돌과, 미국 이민 100주년 기념으로 2002년 LA, 2003년 NY 한국문화원에서 한국 현대 옻칠 회화 전을 개최 했을 때, 마음속에서 느닷없이 큰 과제 하나가 떠올랐던 것이다. 

400년의 전통을 이어온 한국 옻칠의 본고장인 통영에 '옻칠미술관'을 건립해야 되겠다는 각오였다.

귀국한 후, 즉시 소유했던 가옥을 포함한 사재(私財)를 몽땅 털어 2004년 8월 30일 미술회관 건립에 착수하여 2년 후인 2006년 6월 15일 '통영옻칠미술관'을 개관하기에 이르렀다. 경상남도 사립미술관 제1호이며, 국내 최초의 옻칠미술관이기도 하다.

옻칠의 미학적 특성은, 천연 광채와 장식성, 조형성, 조각 미와 방수, 방충, 방부,단열, 항균작용, 전자파 차단 등의 다양한 특성까지 갖고 있다.

이런 놀라운 특성이 있음에도, 수 천 년 동안 단순한 나전칠기(螺鈿漆器)에만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좁은 전통을 깨고, 옻칠의 특성을 살려 나전칠기, 장신구, 조소, 오브제, 회화 등의 영역을 확장하여 한국 현대옻칠예술로 승화시킨 선구자이며, 세계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한국현대옻칠회화 창시자(創始者)가 된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서든지 빠른 시일 내에 이 옻칠예술의 빛이 세계만방에 활짝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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