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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주 전 통영시장의 재직 중에 있었던 이야기⑦ - 북신만 매립사업

기사승인 2019.11.01  09: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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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신만은 너무 깊숙한 내만으로 형성되어 늘어나는 생활하수의 공격에 견딜 수가 없었다.

깊어진 뻘 층이 썩어서 회생(回生)불능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갯벌의 수술 차원에서 썩은 뻘 층을 도려내고 새 흙을 채워야만 했다.

그래야만 해마다 찾아오는 불청객인 적조현상도 막고, 일구어진 땅으로 신도시도 건설하고, 땅값으로 시(市) 재정수입도 꾀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렸음이다.

그런 기대로. 1990년에 당시 김영동 사장께서 이 매립사업을 착수했던 것이다. 그 방법은, 시의 예산을 직접 투자 하지 않고 민자 사업을 유치하기로 했다. 민자 투자 희망자 중 한진종합건설(주)이 선정되어 사업을 착수했다.

당장 메울 흙을 마련하기 어려워, 예정되었던 산복(山腹)우회도로를 연계사업으로 개설하면서 그 잔토(殘土)를 이용하기로 했다. 착수 당시는 토지를 규제하는 때가 아니므로 상당한 흑자가 예상되는 경영 사업으로 전망되었다.

그후 인사발령에 따라 또 다른 시장이 인계 받아 추진하였으나, 산복(山腹) 도로의 잔토만으로는 다 메울 수가 없었다.

추가로 토취장이 필요했으나 마련할 방도가 없어 헤매다가, 용남면 삼화리 산을 민둥산으로 만들고 마는 무리를 저지르기까지 했다.

토취장 문제해결을 못해 공기는 지연되었고, 여러 해 동안 여기저기서 어렵게 흙을 가져와야 하는 고비에서 민선시장이 된 자신이 이 사업을 인계받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설상가상으로 토지 규제가 강화되면서 토지의 가격도 추락했다.

수익이 전망되지 않는 사업이라 사업자 측도 힘이 빠져버렸다. 공사비는 현금이 아닌 땅으로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잘 팔리지 않을 땅을 얻기 위하여, 거액을 투자할 의욕이 났겠는가.

드디어 1998년 말에 준공이 되었고, 조성된 땅은 약 14만평이었다. 투자된 공사비도 1,784억 원이였다.

여기서부터 시청과 회사 간에 정산문제를 놓고, 밀고 당기는 한 판 시비가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정산을 예측하고 수 년 전부터 공시지가를, 인근 기존의 육지 지구와 비슷하게 현실화 시켜, 중앙 관계부처의 승인을 받아 놓았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회사 측에는 미리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조처를 못 마땅하게 여긴 회사 측에서는 감정방법을 놓고 1년 넘게 서로 버티다가 겨우 합의에 이르러 평가를 했다.

그러나 양측에서 추천한 평가사끼리 너무 가격차가 많아, 또다시 회사 측에서 승복하지 않겠다는 트집으로 시일을 끌었다.

그쪽 입장으로는 엄청난 투자를 회수 할 길이 없는데, 시의 입장에서도 공시지가(公示地價) 만은 전혀 양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판사판이었다. 시에서 양보한다면 시의 예산으로 공사비의 손실을 전부 감당해야 할 형편이니 어찌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1년이 넘도록 밀고 당기는 시비 끝에, 그때까지 추진한 결과대로 회사 측에서 승복하게 되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시에서는 산복우회도로 2.6㎞와, 해양과학대학 진입이면도로 1㎞를(약 450억 원 상당) 북신만 매립사업 부대(附帶)이익으로 별도 예산 투자 없이 얻어진 셈이 되었다.

그 당시 시행회사 측에서 더 오래 끌지 않고 양보함으로써, 깨끗이 해결된데 대하여 고맙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로는 너무 큰 부담을 안겨준 결과가 되어 죄송할 따름이다. 어찌 되었던 우리 시민들은 한진 종합건설사에 대하여 감사할 일이다.  

한산신문 hannews@chol.com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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