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을 상징하는 건물을 꼽는다면? 세병관이다. 제승당도 어깨를 견줄 만 하지만, 건립 연대나 상징성을 생각하면 단연 세병관이다. 세병관이 단독 건물이 아니라 삼도수군통제영의 대표 건물이란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세병관은 최전방의 장수들이 매월 임금이 계신 한양을 향해 망궐례를 올리던 곳이자 중앙에서 파견된 고위 관료들의 객사로서 권위가 무척 높았다. 하지만 조선의 해군 총사령부로서 가장 상징성이 높았던 것은 수자기(帥字旗)였을 것이다.

장수 수(帥) 자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고 지휘관의 지엄한 권위를 상징하였다. 지금도 세병관 앞마당 창공에 나부끼며 400년 역사를 증명하고 있고, 한산대첩 기간이 되면 시내 곳곳에도 수자기가 펄럭인다. 수자기는 통제영에만 있지는 않았다. 진중이나 영문의 뜰에 세우는 대장의군기였기에 많은 곳에 내걸렸다. 가까운 진주성에도 펄럭이고 있다.

인터넷에서 수자기를 검색하면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가 가장 먼저 뜬다. 신미양요 때 강화도 광성진에서 미군이 약탈해갔다가 지난 2007년 대여 형식으로 귀환하였다. 현존하는 유일의 조선 시대 장군기다.

깃발은 대개 크고 작은 집단이나 무리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펄럭이는 인간의 실존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특히 소리가 쉬 닿지 못하는 바다에서는 역할이 더욱 크다. 멀고 거친 바다를 오가는 배들은 깃발에 희망과 약속, 만선의 기쁨을 매달기도 한다.

2018년 제주 국제관함식에서 대통령이 사열한 일출봉함에 수자기를 게양한 것을 두고 일본은 뜬금없이 시비를 걸었다. 임진왜란에서 왜군을 완벽하게 제압했던 이순신 장군을 상징하는 깃발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 당시에 수자기를 썼는가는 분명치 않다. 18세기 문헌에 처음으로 수자기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전문가들은 임란 당시에는 수자기를 쓰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이 전범기인 욱일기를 사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외 여론이 들끓고 있다.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고 사죄하기는커녕, 고통 받았던 이들의 심장에 다시 칼을 들이대는 몹쓸 짓을 하겠다는 것이다.

욱일기를 써야 할 자신들만의 이유가 있다손 치더라도 주변 이웃 국가들이 모두 반대한다면 당연히 깃발을 내리는 게 상식이요, 전범국의 도리이다. 독일은 일찌감치 하켄크로이츠를 법으로 금지하였다. 피해자들이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일본인에게도 욱일기 사용은 수치요, 화합과 협력을 가로막는 장애일 뿐이다.

얼마 전 한산대첩광장에 대형 수자기를 세워서 통영의 역사적 정체성을 알리고, 관광객을 위한 명소로 삼자는 어느 시민의 제안을 SNS에서 본 적이 있다. 참 좋은 제안이라 생각한다. 깃발은 상징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시민도, 관광객도 깃발 아래 모여들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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