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기념사업회 주최, 재단법인 풍해문화재단, 한산신문사 후원

본상 수상작

천불동 계곡
                                              김 보 한

석벽엔 널린 뿌리 네 천불동 가을 단풍
곳곳에 전설가루 천상의 피사체다
봉긋이 공룡능선이 날을 세워 다투네

곱다시 싸락 별빛 천당폭 오련폭포
피로도 쉬이 좇네 죽지 터는 비룡폭포
돌 틈쯤 문수 귀면암 독경소리 늘 잣다

천개라 불상 조각 시중보살 합장 예불
네 가히 설악 중 최고 옥류의 노랫가락
속세를 뒤로 제킨 양 양폭의 틈새 기어 넘다

앙상블 미지의 노래 살기 등등 죽음의 계곡
미물들 하·동안거로 금줄 쳐진 터부의 땅
태산은 준령 위의 탑 성불에 든 대청봉.

 

당선소감

나에게 있어 시와 공학은 피와 살의 관계입니다. 본격적 시사랑은 초정 김상옥 선생님과의 첫 만남으로부터 비롯됩니다. 1980년 말입니다. 팔팔한 20대 중반이었어요. 까짓것 제아무리 중앙지 신춘문예라도 1∼2년쯤으로 얕잡아보았는데, 5년이 훌쩍 걸렸드랬어요. 그 시점에서 내 자신을 되돌아보니 허무하기 짝이 없었지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습니다. 시가 이상이라 한다면 공학은 현실입니다.

시(詩)로 인해서 나는 나의 부모형제와 피붙이에게 매우 실망시켜 버렸지만, 시는 나의 목숨을 지탱해 주는 아주 귀중한 보물이자 종교랍니다. 새벽 세시경이면 잠에서 깨는 버릇이 시로부터 비롯됐습니다. 시가 없었다면 공학도 내팽개치고 아마 비렁뱅이가 되었겠지요. 사실 철학자가 갈망이었는데 시(詩)쪽으로 자리 잡혔어요. 이런 의미에서 초정 김상옥 선생님은 나에게 있어 둘도 아닌 오직 한 분 스승이십니다.

스승의 시사상보다 올곧은 예술혼(藝術魂)에 홀딱 반했었지요. 멈칫멈칫하며 당선소감을 씁니다. 선을 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10년여 짬짬이 백두대간을 헤치며 미쳐 날뛴 지난날들을 시조를 통해 검증해주셔서 기쁩니다. 이 또한 나의 귀중한 '현상의 시학'의 한 울타리입니다. 부족합니다. 열심히 앞길 가겠습니다. 스승님! 사모님과 잘 계시지요. 명복을 빕니다.

시집을 제출해준 친구 배순석 시인께 소식을 전합니다. 오늘의 영광은 '통영시산악연맹' 회원님들과 '한아름산악회' 동지들 그리고 여럿 산(山) 선후배님들과 많은 분들의 인연과 응원 덕분입니다. 지금 소낙비 쏟아지고 쨍하니 맑은 아침입니다. 고맙습니다.

약력 - 1955년 경남 통영 출생. 동아대학교 기계공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경상대학교 대학원(공학박사, 2006) 졸업. 1986년 ≪경향신문≫신춘문예 시조당선, 1987년 '문예중앙'(가을 호) 시 발표 등단. 시집 : '인간도 꽃이 되던가', '벙어리 매미는 울지 못한다', '툰드라를 떠나는 영혼', '아름다운 섬', '섬과 섬 사이', '어부와 아내', '새끼를 깐다', '진부령에서 하늘재까지'. 시조집 : '어느 길목에서'(1995), '고향'(2010), '동해에서'(2014), '백두대간, 길을 묻다'(2017). 연구서 : '탁상수의 발자취와 시세계 고찰'(2015), '장응두의 인생과 시세계 연구'(2016). 수상 : 현대시조문학상(시조, 2001), 한국바다문학상 본상(시, 2007). 성파시조문학상(시조, 2013). 청마문학연구상 대상(학술논문, 2017),

우수상 수상작

겨울 등광리 12
-마을회관에서
                                           박 현 덕

폭설이 퍼붓기 전 김장도 다 해놓고
외로움을 삭히려 노인네들 회관 모여
겨울날 당번이 해준 점심 공양 받는다

마을화관 개소식 사진을 짚어보면
눈부신 시절들을 제 가슴에 품은 채
누구는 서녘 하늘 위 새처럼 날아갔다

날 저문다 바람처럼 어정대는 생 다독여
노인보다 앞장 선 지팡이를 따라가
혼곤한 잠자리 편다 낙엽이 쓸린 소리

 

당선소감

친구로부터 구례 화엄사의 홍매화 절정 소식을 듣고, 창 밖 풍경을 바라보다가 뜻밖의 수상소식을 들었습니다. 긴 인고의 계절인 겨울을 지나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문턱에서 받은 소식이었습니다. 그저 변방의 한 시인으로 계절의 순환 속에서 '시조'의 씨앗을 찾아 발아시켜 결실을 거둘 뿐입니다.

깊은 서정과 고결한 언어로 자신만의 시적 세계를 펼친 초정 김상옥 선생님의 작품을 다시 정독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두보의 시 <절구>가 생각났습니다. 객지에서 지나가는 봄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이 봄도 목전에 또 지나가는데 / 어느 날이 돌아갈 해인가"처럼. 자연의 풍광 속에서 삶의 성찰을 이끌어내는 두보였습니다. 김상옥 선생님의 시세계도 전통의 미학 속에서 오롯한 민족정신을 찾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시조는 다양하게 사유의 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 시조시인들은 삶의 풍경 또는 지난한 역사, 현실 속에서 알찬 작품을 발표합니다. 종래의 고답적인 울타리에서 벗어나 보다 혁신을 꿈꾸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현대시조를 개척한 시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그분들의 작품을 영향 받아 자신의 것으로 더 내밀화 시켜 정형시를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시조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과 초정 김상옥 선생님의 시조사랑을 펼치는 <초정기념사업회>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민족과 늘 함께한 시조를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그 시대. 우리의 정서를 담아 격조 높은 정형미학을 세우겠습니다.

약력 - 1967년 전남 완도 출생.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87년 <시조문학> 천료, 1988년 <불교문학> <현대시조> <월간문학> 신인상 시조 당선, 1993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조집 : '겨울 삽화', '밤길', '주암댐, 수몰지구를 지나며', '1번 국도', '스쿠터 언니', '겨울 등광리', '야사리 은행나무'. 수상 : 한국시조 작품상. 시조시학상. 김만중문학상 등 수상. 현재 : '역류' 동인.

제6회 '김상옥백자예술상' 본상 심사평

민족의 혼을 담은 초정 김상옥 시인을 기리며

전국 시조시인 21명의 작품집이 응모되었다. 예선에서 본심에 넘겨진 '그래봤자', '백두대간, 길을 묻다', '겨울 등광리', '광주에서 꿈꾸기'로, 총 4편이 걸러졌다. 이에, 심사위원들은 시조격의 작품성 우열과 김상옥 문학정신의 맥과 혼, 즉 넋이 얼마나 깃들었는가에 초점을 두기로 하였다. 이는 초정 김상옥 선생의 원대한 시조문학성은 물론, 민족의 혼을 구구절절이 새겨 온 분이셨기 때문이다. 해서 시조의 율격 즉 '초, 중, 종장의 역할에서 시조 전통의 본령에 우열을 두었다. 위 네 권의 작품집에서 136편의 시조 중 전통 정형시조, 즉 율격 역할의 77[평시조(平時調) 위주]편이 들어있는 김보한의 '백두대간, 길을 묻다'를 본상으로 짚을 수 있었다.

사천년 민족정기인 백두대간을 종주, 등산화로 찍어낸 발의 현장을 시조집으로 얽어낸 것이 작품 스케일이 크다, 또한 재미가 있다, 읽는 사람이 감동이가고 단시조 맛이 났다. 이 77편 외는 연시조와 일부 율격에 끼울 수 없는 것 또한 《김상옥 백자예술상》의 엄격성(혼)에 기인한 것들로 짜여 있다. 수만 수천 년 더 흘러도 사그라지지 않을 백두대간의 혼을 시조시로 형상화 된 것이다. 백두대간을 거치면서, 설화, 구전, 전설, 유언, 야사 외 많은 자료와 문헌을 각주에 달아 독자들로 하여금 한국 최초의 백두대간 종주 서사시조집으로 관심가질 수 있잖나 싶었다.

이외 박현덕의 '겨울 등광리'는 시인의 경험 사실에 대한 시적 이미지를 일률적으로 노래 한 노력을, 현실화 형식으로 담아냈다고 할 수 있는 수작의 시조시편들에 비해, 엄격한 전통시조 정형에서 고민을 안겼다. 한편 서정시편 면에서도 약간 아쉬운 몫에서 우수상으로 선정했다, 이어  '광주에서 꿈꾸기'도 더할 나위 없는 서정시조 편들이었으며, 또  '그래 봤자'도 물위에 기름 한 방울을 숟갈로 뚝 뜰 정도의 응축된 맛이 어느 시조들을 불허 할 만큼 간결했다.
김광자 심사위원장(시인·사단법인 부산시인협회 前이사장), 김정자 심사위원(문학평론가·시인· 부산대 명예교수(현))  전치탁 심사위원(시조시인·부산 시조시인협회 前회장)

제5회 '김상옥백자예술상' 신인상

신인상 수상작

우물에 대한 단상

                                                박미자

햇빛 한 동이를 찰랑대며 이고 오던
그 곁에 삽살개도 촐랑촐랑 따라오던
상앗빛 감꽃 몇 톨이 우물 속에 떨어지던

어울림 그곳에는 소문이 분분했다
깊이를 잴 수 없는 말들을 퍼 날라도
언제나 웃음 자잘한 소통의 창구였다
        
우물 속 청소하고 바닥에 깔았던 숯
나쁜 기운 걷어내고 말개진 참새미에
달님도 심심할 때는 물맛 보러 오곤 했다.

 

당선소감

겨우내 언 강이 풀리고 새순이 돋아나는 봄날,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로 분주한 시간에 뜻하지 않는 전화를 받고 일순 어리둥절했습니다. 바쁜 틈바구니에서 창작에 임하는 저를 누군가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습니다.

돌아보면 고단한 삶의 길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문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것을 위로받을 수 있는 건 대자연의 품이었습니다. 성찰하는 자세로 사물을 바라보며 글감을 얻고,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에서 어느새 마음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풍족하지 않은 유년 시절이었지만, 자연의 품에서 맘껏 뛰놀며 눈빛 카메라에 담아두었던 것이 문학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문학의 길로 이끌어주신 분들이 떠올랐습니다. 남부도서관 문창반 선생님, '글쌈'선후배님, '운문시대'동인, 그 외 열띤 토론을 하며 함께 공부하는 문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문학기행으로 통영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동피랑 마을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참 포근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펄떡이는 수산시장의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고장에서 추진하는 명망 높은 김상옥백자예술상 신인상을 받는 것이 참으로 영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무겁습니다.

부족한 글을 선고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추진위원회에 감사드립니다. 김상옥 선생님의 시 정신을 깊이 새기며 더욱 열심히 작품을 일궈나가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약력 - 1965년 경북 영덕 출생. 제32회 〈샘터시조상〉 장원,  2007년 〈유심〉 시조백일장 장원, 2008년 중앙일보 지상시조백일장 장원,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등단. 시조집 : 『그해 겨울 강구항』(2013), 『도시를 스캔하다』(2018). 수상 : 제1회 울산시조 작품상, 제14회 울산문학 작품상.

제5회 김상옥백자예술상 신인상 심사평

총 12편의 작품이 응모되었습니다. 작품집 『도시를 스캔하다』, 『쉼표, 또 하나의 하늘』, 『모퉁이에서 놓친 분꽃』, 『섭섭한 오후』, 『지구에 손그늘』, 『비어 있어도』 등이 최종심에 올려 졌습니다,(초정기념사업회)

박미자의 『도시를 스캔하다』를 주목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일상에 눈을 두려는 시인의 의지가 뚜렷하다.

자칫 자기만의 리듬을 잃기 쉬운 시조 쓰기에서 생동하는 감각을 유지하려는 발로이다. 그에게 시조는, 한편으로 일상을 더 세심하게 지각하고 다른 한편으로 생의 활력을 얻는 매개가 된다.

정격에 대한 빼어난 솜씨를 바탕에 두면서 구체적인 삶이 만들어 내는 파격의 율동을 얻는다. 가령 「작괘천 물소리」, 「우물에 대한 단상」, 「골목집」 등을 눈여겨보게 된다.

일상의 구체에 깃든 삶의 심연을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발화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높게 평가하여 심사위원들은 신인상으로 결정하였다. 축하하며 정진을 기대한다.(구모룡 문학평론가, 한국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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