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한(시인, 문학평론가, ‘초정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

박기섭 시조시인의 시조나 잡문은 간혹 알의 속이 없고 쉬어빠진 찐빵일 때가 있다. 이는 그의 글을 접할 때 이따금 느끼는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한산신문 2018년 9월 15일(토)자 15면에 쓴 나(1955년생)의 ‘2018년 통영문학상(김상옥 시조문학상) 수상자 선정에 대한 소견’(이하 ‘소견’이라 한다.)을, 박기섭 시조시인(1954년생)이 한산신문 2018년 10월 13일(토)자 29면에 답한 글을 읽으면서, 왠지 또다시 다 찌그러진 깡통소리가 깡깡 울려올까.

내가 쓴 ‘소견’은 단락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2018년 ‘김상옥 시조문학상’에 관련 혹은 ‘김상옥 시조문학상’ 또는 통영의 문학상 전반에 속하는 1) 통영시와 해당되는 사항과 2) ‘통영문학상’ 운영위원회와 해당되는 사항, 3) 심사위원에 남기는(재고에 재고를 거듭해주시길 요청) 글로 대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주제를 넘어서서 ‘생뚱맞게’ 졸필을 휘날리며, 상대를 저급하게 비방하는 치졸함까지 남겼다. 그의 글처럼 ‘어지러운’ 글은 주제도 상실되고 중차대한 결론도 까먹어버렸다. 그저 어떤 이의 말만 들었는지, 그만의 흥분에 도취되어 악필을 남기곤, 남의 집안일에 감나라 배나라 하는 식의 주장이다. 사주를 받고 쓴 글처럼 읽히는 것을 어쩌랴. 본질은 흐려놓고 악성 글귀만 일삼아선 안 된다. 한심한 박기섭 시조시인아! 나는 통영에 붙박이로 살고 있고 그대는 대구와 관련 있는 듯 한데, 누가 통영사정을 더 잘 알리오. 나는 ‘김상옥 문학상’(사실은 이 안에 좀 더 폭넓은 예술기념사업도 포함되어 있었다.)과 ‘김춘수 문학상’을 제정하자는 운동을 제일 먼저 시도 전개했다. 그리고 나의 글 ‘소견’은 사실에 충분히 입각해서 쓴 것이다. 나는 진정 그대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철저하게 날조 기만하지 말지어다. ‘상습 언어 테러’가 뭔가. 그대가 현재 ‘언어 테러’를 중대하게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 전체 횟수를 치면 나 외에도 적지 않게 쓴 글들이 있고, 현재도 신문 게재를 갈망하는 분들도 몇 분 존재한다. 나는 한산신문사 칼럼리스트로, 통영의 제반 문학상에 관련 총평을 맡아 쓰기도 했다. ‘김상옥 시조문학상’에 접해서는, 애정적인 발상을 가지고 ‘초정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 자격으로 쓴 글이, 어찌해서 심사에 걸리는가.

그대가 유달리 애지중지 대변하는, 박지현 시조시인의 청마문학 시조부문신인상 시집 표제작(버젓이 인터넷상에 부각되어 있는), ‘저물 무렵의 시’ 시조 한 편을 읽자.

첫째 수 “여닫이문 빼꼼 열고 너 뭐하노, 부르던/내 길 밖에 비 내리고 너는 어디에도 없다/저 바다 푸르던 시절 어둠까지 환했던”은, 〈저 바다 푸르던 시절 어둠까지 환했던〉 먼 과거 즉 예전에, 〈여닫이문 빼꼼 열고 너 뭐하노〉하고 〈부르던〉 그가 생각나고, 〈내 길 밖에 비 내리고 너는 어디에도 없다〉가 맞지 않은가.

둘째 수 “이마에 각인된 또렷하지만 먼 기억들/억새풀 늦가을이 바람으로 일렁이는/너 없는 시간 밖에서 장대비만 쏟아진다”는 〈억새풀 늦가을이 바람으로 일렁이〉자, 〈이마에 각인된 또렷하지만 먼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너 없는 시간 밖에서 장대비만 쏟아진다〉가 반듯하지 않은가.

셋째 수 “입속에 넘쳐나는 향방을 잃어버린/둥둥 흙먼지로 허공에 떠도는 말/지워진 수신인으로 날려보는 꽃 잎 몇 장”은 대체 무슨 말을 해대는 건지 일반 독자로는 이해하기 곤란하다. 시외버스를 타고 지은이에게 가 애써서 물어봐야 할 실수를 저질렀으니 이를 어쩌랴.

마지막 수 “겹겹의 사다리로도 가 닿을 수 없는 길/입 안에 고여 드는 내 깊은 생의 바다/으스름 저녁 한 때가 물 그늘에 숨는다”는 〈입 안에 고여 드는 내 깊은 생의 바다〉에서는 화자가 그리워하는 그 ‘푸르던’ ‘바다’는 입안에서 웅얼대는 ‘시절’과 통하는 것 같이 보이고, 〈겹겹의 사다리로도 가 닿을 수 없는 길〉 그곳 길이나 저승길(?)로 인해서 애절하고, 지금은 〈으스름 저녁 한 때가 물 그늘에 숨는다〉가 어울리지 않은가.

박기섭 시조시인도 시조를 쓸 때, 박지현 시조시인의 웃기는 류로 갈겨대는가. 박지현 시조시인아! 내공을 좀 더 쌓고 상을 받았어야 옳았다. 뭣이 그리 상 주고 받기가 급한가.

위의 박지현 시조시인이 쓴 시조가 정말 기형시조가 아니란 말인가. 수준이하의 시조다. 박기섭 시조시인이 너절한 글 말미에 “당시 심사위원의 안목과 자질까지 깡그리 무시한 몰염치와 오만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고 했는데 과연 그런가. 그대 글이 한심하기 그지없는 지껄임이지 아니한가. 널리 공모(이 안에는 광의적으로 추천도 포함된다.)를 했다면 이보다도 더 훌륭한 작품이 와! 몰려올 수 있다. 정말 통영시민이 세금으로 낸 돈을 잘못 사용하였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말인가.

한 번 더 말하지만, 청마 유치환 시인은 시조를 쓰지 않았다. 그 당시 시점에 선생을 기리는 장르에 시조까지 포함시키는 건 문제가 된다고 했다.

통영의 현 문학상제도 중에, 예심에 선정시킬 작품을 중앙의 유명 출판사 몇 곳에서 나온 시집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밀실 야합에 해당된다고 생각 안 드는가.

등단 30년을 훌쩍 넘긴 문인(박기섭 시조시인도 포함)이 받은 시조문학상이 정말 없는가. 등단 40년 넘어도 왕성하게 시조문학상 받는 것이 현 실정이다. 여타 문학상 제도 중에 등단 20년 이상, 또는 시집 2권 이상 발행해야하는 요건을 응모 요강에 규정지운 제도가 잘 운영되고 있는 것은, 본보기이고 본보기로 하면 훌륭하다. 그런 제도 하에서도 실재 수상 대상자는 등단 27년 이상의 시조시인들이 받고 있다. 그래서 한 제안인데 이렇게 매몰차게 몰아붙이면 양반 못돼요. 선배로서 좀 더 수도정진하고 상을 받으라 했는데 뭐가 잘못되었나.

2018년 ‘김상옥 시조문학상’의 심사평은, 미사여구를 동원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렇게라도 해야 도리가 맞지 않은가. 그리고 그대가 제도 또는 ‘방향성’ 운운해쌓는데, 이 부분은 도를 넘치면 못쓴다. 이런 행위들로 인해 통영의 문학계는 현재 중병을 앓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부문별 이름을 쓰든 포괄하는 이름을 쓰든 그것은 순전히 쓰는 이의 뜻일 뿐, 하등의 문제가 될게 없다”고 했는데,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지 되묻고 싶다. 글 함부로 쓰면 형편없는 사람 됩니다. ‘김상옥 시조문학상’을 받고 프로필 또는 그 외에 ‘통영문학상’이라고 결과적으로 표기되기도 하는 방식의 제도는, 웃지 못 할 촌극을 뛰어넘어 망자 명예훼손 행위이다. 이 외에도 되짚어 따져야 할 부분들은 더 존재한다. 하지만 그대의 체면도 있고 지면관계상의 제약도 있고 해서, 일단 너그러이 여기에서 접는다.

결론적으로 나는 문학상의 일반관리 규정에 관련해서, 격이 한 차원 높은 개념이 아니라 자기 편향적 발상을 소유하고 있는 박기섭 시조시인을, 2018년 ‘김상옥 시조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선정한 것은 철저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박기섭 시조시인은 나의 신중한 ‘소견’의 글에 맞서서, 점잖지 않고 경망하게 답을 한 실례 부분에 있어서는, 그 잘잘못을 만인(통영시민과 한산신문사와 초정 김상옥 선생 유족 및 위임인, 그리고 격조 높은 통영문학인들 등)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해야한다. 그렇지 않을 시에는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음을 강력히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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