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도야음(閑山島夜吟)에서 이순신 장군은 한산 앞바다를 수국(水國)이라 불렀다. 물의 나라에서 함께 밤을 새운 건 활과 칼이었다. 활과 칼을 비추는 새벽달이 심중에 내려앉았다.

 

水國秋光暮 수국추광모 /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警寒雁陳高 경한안진고 /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憂心轉輾夜 우심전전야 /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殘月照弓刀 잔월조궁도 / 새벽달 창에 들어 활과 칼 비추네

 

고려말 포은 정몽주는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洪武丁巳奉使日本(홍무정사봉사일본, 홍무 정사년 왕명을 받아 일본에 사신으로 가다)'라는 긴 제목의 시를 지었다. 포은 선생은 일본을 수국(水國)이라 이름하였다.

 

水國春光動 수국춘광동 / 섬나라에 봄빛 감도는데

天涯客未行 천애객미행 / 외로운 나그네는 가지 못하네

草連千里綠 초련천리록 / 풀빛은 천 리나 이어져 푸르고

月共兩鄕明 월공양향명 / 달빛은 두 고향에 함께 밝구나

遊說黃金盡 유설황금진 / 유세하느라 황금마저 떨어지고

思歸白髮生 사귀백발생 / 고향 생각에 흰머리가 나는구나

男兒四方志 남아사방지 / 사나이 세상 다스리려는 큰 뜻은

不獨爲功名 부독위공명 / 오직 공명만을 위함 아니라네

 

시의 첫 구절 水國春光動(수국춘광동)이 한산도야음의 水國秋光暮(수국추광모)와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은 200년 전의 포은 선생을 한산 수국으로 모셔와 세상사 가운데 장부의 깊은 마음을 나누었다

섬의 작가 김성우는 <돌아가는 배>에서 포은과 충무공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어릴 적 꿈이었던 자신만의 수국을 세운 이야기를 썼다.

소싯적 나의 꿈은 내가 태어난 섬을 왕국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 꿈이 저절로 깨어지는 나이가 되면서부터 새로운 꿈이 자라기 시작했다.... 섬이라 해서 아무 데나의 섬이 나의 섬일 수는 없다. 고향 섬이 내 것이 못 된다면, 적어도 고향의 해역 안의 섬이라야 했다. 그 영해는 한려수도다. 한려수도의 물길 가운데에 있는 자그만 무인도를 찾아냈다.... 섬은 행정 지도상의 이름은 있지만 아무도 부르지 않으니 무명도나 다름없었다. 새로 작명하기로 했다. 그 이름은 수국(水國).

통영은 물의 나라다. 통영사람은 물의 나라에 산다. "그는 섬이었다"고 불렸던 김성우와 마찬가지로 통영 사람은 날마다 수국을 꿈꾼다.

수국은 한산 앞바다에도 있었고, 대한해협 건너에도 있었다. 한산 수국과 일본 수국을 하나로 묶어서 보면 21세기 동북아시아의 수국이 된다. 6천 년 전 선인(先人)이 살며 배우며 사랑하던 그 수국이다(제141~143화 노대도 이야기 참조).

저자 주. 사진은 이순신 장군의 친필 수국(水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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