뎅그렁~ 뎅그렁~~ 청명한 가을 하늘에 풍경이 울렸다.

저건 무슨 물고기인가요?

뽈락입니다. 통영에선 뽈락이 최고죠 (엄지 척!)

십수 년 전 죽도연수원 마당에서 낯선 모양의 풍경을 만났다. 풍경은 대게 납작한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는데, 몸통과 지느러미, 꼬리 부분이 뚫새김되어 있는 독특한 모양이었다.

물고기를 매단 풍경은 깨어있는 수행자의 벗이다. 물고기는 자나 깨나, 심지어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기 때문이다. 뽈락 풍경 소리는 아직도 귓전을 울린다.

그날 마당에 둘러앉은 이들은 큰 도화지를 가운데 놓고 있었다. 통영의 미래를 그림으로 그려보는 자리였다. 그림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한참 토의한 끝에 여러 장의 멋진 그림이 그려졌다.

그림이 그려지는 동안 풍경 소리는 계속 내 마음을 흔들었다. 우리가 꿈꾸는 통영은 어떤 곳인가? 풍경 하나조차 통영다운 통영, 통영 사람이 자랑스러워 하는 통영, 누구보다 통영 사람이 행복한 통영....

통영 사람에게 뽈락은 유별난 생선이다. 소금구이로, 김치로, 회로 밥상과 술상에 오르기만 하면 게눈보다 빠르게 사라진다.

뽈락은 산란하지 않고 체내에 새끼를 낳아 기르는 난태생 어종이다. 4~5mm 정도 자라면 체외로 산출되어 수중 암초대에서 자란다.

뽈락에 관한 기록은 조선 후기 김려의 <우해이어보>와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처음 등장한다. 작고 엷은 자주색 물고기를 보라어, 보락, 볼락어로 부르는데, "엷은 자줏빛을 보라라고 하며, 보라는 아름다운 비단이라는 뜻이다. 보라어는 분명 여기서 유래한다"고 하였다. 그러니 뽈락은 비단처럼 아름다운 물고기이다.

뽈락 맛을 알아야 통영 사람이라고 한다. 뽈락의 맛을 채 알아차리기 전, 덜 삭은 뽈락 김치를 먹고는 식중독에 걸려 고생한 기억도 있다.

통영에서 산 세월이 작은 소나무의 나이테만큼 되었을 즈음, 스스로 통영 사람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추도 식당에서 뽈락 김치를 먹었을 때부터다. 반이나 남은 밥그릇을 들고 주인아주머니를 향해 애틋한 표정을 짓게 되리라고는 예전에 상상조차 못 했다.

이날 이후 누군가 내게 '통영 사람이 아닌데도 통영을 사랑해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면 그냥 싱긋이 웃게 되었다. '통영 사람'을 무엇으로 정의할 건가? 통영다움은 또 어떻게 정의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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