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청처럼, 자문위원을 추첨제로 선정해 주세요.

1. 제가 오지랍이 너무 넓어서 그런지, 저는 강석주 시장님이 당선되고 나서 기대보다 걱정이 더 크게 들었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공약들을 어떻게 다 지켜나가시겠습니까? 이제 당선이 되었으니, 지금부터 저는 대놓고 시장님을 비판하는 것을 저의 사명으로 삼겠습니다.

2. 민주적 복지와 시혜적 복지

 

민주적 복지

시혜적 복지

추진 주체

시민

지도자

사례

덴마크 등

북한 등

관심

행복의 과정과 수단

행복의 결과

인류학자인 마빈 해리스가 쓴 <식인과 제왕>이라는 책을 보면, 신석기 시대 잉여생산물에 의한 시혜적 복지가 바로 독재자(왕)의 등장 배경이라고 하더군요. 독재자들은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대가로 복종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북한이 삼대 독재를 거치면서 하고 있는 짓이 바로 이런 시혜적 복지입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같은 독재자들도 인민을 사랑하는 마음은 하늘과 같습니다. 고복격양(鼓腹擊壤)이라는 사자성어도 똑같이 독재를 옹호하는 말입니다. 지도자가 뛰어나서 태평성대를 이루면 백성들은 왕이 누구인지 알 필요도 없이 생업에 종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시민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두지 말라는 것으로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에나 어울리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시장님이 <시민 행복이 우선이다>라는 현수막을 걸었을 때, 저는 그것이 독재로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습니다. 시혜적 복지는 추진 주체가 시민이 아니라 지도자입니다. 시민은 그냥 지도자가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기를 기다리는 백성이 되어 버립니다. 또한 시혜적 복지는 어떻게 행복해질지라는 과정은 잊어버린 채 마냥 결과로서만 행복을 외칩니다. 시장님의 선거 공약집을 아무리 열심히 쳐다봐도 시민이 행복의 주체로서 활동하기 위한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장님이 공약한 시민 행복이 시혜적 복지에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3. 시혜적 복지가 아닌 민주적 복지가 되려면

아니었나요? 그럼 다행입니다. 하지만, 시장직을 4년만 하고 그만 둘 게 아니시라면, 시장님의 <시민 행복>이 시혜적 복지가 아니라 민주적 복지라는 사실을, 정책과 실천으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두 가지 아이디어를 드립니다.

(1) 통영시 주민참여예산 조례를 개정하여 위원을 추첨제로 선임하십시요.

베스트셀러인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하버드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인 마이클 샌들 교수는 추첨제가 가장 정의로운 분배 방식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대학교에 입학할 때 공부를 잘 하는 순으로 입학시키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추첨제로 입학시키는 것이 현저하게 불평등한 미국의 교육기회를 개선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추첨제야말로 누구에게나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는 가장 민주적인 방법입니다. 행복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자 과정입니다. 시장님이 정말 시민 행복을 시정 목표로 삼는다면, 아쿠아리움같은 황당한 건설 공약이 아니라, 시민 참여의 과정에 대한 공약을 해야 합니다.

추첨제를 이미 시행하고 있는 지자체도 있습니다. 서울시 성북구는 60명의 주민참여예산 위원을 참여 희망자 중에서 무작위 추출 방식(즉, 추첨제)으로 선정하도록 이미 2013년에 조례를 개정했습니다. 이 사례는 시장님이 협약을 맺은 <국민 총행복 전환 포럼>의 창립대회 자료집에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통영에서도 이런 추첨제가 필요합니다. 시민 참여 예산 조례뿐만 아니라, 도시계획 등 각종 자문위원, 심의위원을 모두 추첨제로 해야 합니다. 시장님이 후보자 시절 대중교통 공약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엄청나게 많은 시민들이 대중교통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댓글로 제시했던 것, 기억 나시나요? 그렇게 시민들에게 시정 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이를 정책으로 실현해야 합니다. 시민 참여 과정이 바로 시민 행복의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2) 통영시 행정 정보 도서관을 만드십시요.

시민을 불행하게 하는 독재형 시장의 또다른 특징은 바로 비밀주의입니다. 뭐든 꼭꼭 숨겨놓다가 업자들과 짬짜미를 해서 예산을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일들을 우리는 여기 통영에서도 지난 수십년동안 봐왔습니다. 시장님의 공약 중에서도, 아쿠아리움 등 그런 우려를 낳는 것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만일 시장님이 이런 업자들과의 짬짜미에 놀아난다면, 최근 용남면 석산개발업자의 수백억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보는 것처럼, 시장님 개인에게도 큰 불행이 닥칠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시 행정 정보를 목숨 걸고 공개해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과의 독대를 없애고, 모든 회의를 장관들과 함께 한 이유도, 자신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위협하려는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협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정보 공개를 위한 확실한 방법이 바로 행정 정보 도서관입니다. 홈페이지 상의 온라인 도서관 말고 물리적인 도서관을 마련해서 시 예산서와 결산서, 각종 개발 사업 계획서, 환경영향평가서 등을 종이책으로 보관해야 합니다. 시민 누구나 볼 수 있게 개방해야 합니다. 10년 이상 보관함으로써 과거 잘못된 계획에 대한 책임도 지겠다는 선언을 해야 합니다.

4. 충신의 말은 쓰고, 간신의 말은 달콤합니다.

이런 민주 시대에 충신이니 간신이니 하는 말이 안 어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같은 일반 시민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시장님이 가진 권력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큽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하늘같은 권력이 사라지는 4년도 금새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통영시에서 오랫동안 좋은 정치를 펼치고 싶으시다면, 저처럼 시장님을 비판하는 수많은 시민들의 이야기를 새겨 들어야 합니다. 충신의 말은 쓰고, 간신의 말은 달콤합니다. 쓴 약이 생명을 구하듯, 듣기 싫은 비판들이 시장님의 정치 생명을 오랫동안 지켜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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