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현대미술의 교과서 김형근 화백 눈물의 간담회
‘통영=김형근, 김형근=통영’ 혈관타고 흐르는 통영의 혼
내년 통영으로 돌아올 것, 김형근미술관 설립 평생의 꿈

어쩌면 내가 붓을 잡게 된 것은 통영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운명일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것이 나의 욕심이라 해도 그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소신을 지켜가고 싶다. 끝까지, 내 이름을 믿고, 사람들의 겉치레에 빠져서 나 자신을 속이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까지 지켜온 내 소신이다.

절제와 철저한 자기 책임과 산고의 고통을 통해 온 힘을 다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을 죽는 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좋은 화가란, 나만의 길을 지켜가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이 담겨야 하고 그것을 관객으로부터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그림은 상당히 차원이 높은 예술이다. 조형예술을 만드는 예술세계에 대한 책임은 끝이 없다.

김형근의 예술, 그림 속에는 나의 정신세계가 담겨 있다. 모든 정물과 색상과 구도와 표현에는 이유가 있고 내가 있다.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예술의 혼 통영이 있다. 그리고 묵묵히 평생 내 곁을 지켜준 나의 아내 이금복 여사가 함께 있다.

“여러분들이 나와 더불어 나보다 훨씬 많은 역량과 예술적 혼으로 우리 고향을 위해서, 이 나라를 위해서, 나아가 전 세계를 위해서 힘써줬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교과서 해리(海里) 김형근(89) 화백. 평생 그를 따라 다니는 호에 새겨진 예술의 원천 그의 고향 통영바다는 따뜻한 격량으로 그를 껴안았다.

구순을 바라보는 노 화가는 ‘통영=김형근, 김형근=통영’이라며 자신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통영의 혼을 3시간 가량 쏟아내며 눈물로 화답했다.

후배들 역시 노 화가와 함께 울고 웃고, 통영의 자존심이자 세계미술계를 이끄는 해리 김형근의 생애와 예술세계에 흠뻑 빠져들었다.

세계 미술계 반란자라는 닉네임을 가진 김형근 화백(89) 부부가 오랜 세월 쌓아온 예술의 혼과 함께 고향 통영을 방문,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큰딸 김양선 화가와 막내아들 김성주씨도 이 아름다운 동행에 함께 했다.

통영미술협회는 지난 20일 남망갤러리에서 아주 특별한 ‘김형근-작가와의 대화’ 자리를 마련, 통영 예술사 한 페이지를 기록했다.

한국미술계 살아있는 교과서 김형근 화백을 초대작가로 초청, 작가의 작품세계와 예술혼에 대해 함께 심취했다.

또 김형근미술관이 설립되면 기념으로 선물하고자 편찬한 화문집 ‘心과色’을 참석자들에게 선물, 친필 사인과 사진을 찍는 등 아름다운 소통의 시간을 나누었다.

김형근 화백은 공간과 거리, 구도 등을 전혀 무시하고 특정한 장르나 양식을 탈피, 새로운 소재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작가정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970년 국전 대통령상 당선작 ‘과녁’으로 이름을 알린 김형근 화백은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묘사된 이 그림을 통해 혁신을 만들어냈다.

청와대 소장 미술품인 ‘과녁’은 현재 청와대 사랑채에서 진행되고 있는 ‘청와대 소장품 특별전’에 전시, 그동안 일반 국민은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던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김형근 화백과 함께한 ‘작가와의 대화’에는 작가와 작품에 관심이 있는 지역 화가들과 시민 30여 명이 참석,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김형근 화백은 “남망갤러리에서 여러분들이 저를 맞이해주는 이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집사람의 도움이 컸다. 고향 통영에서 말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굉장히 기쁘고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작가와의 대화는 질의응답으로 진행, 김형근 화백의 작품과 평소 궁금했던 점을 나누며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예상대로 첫 질문은 작품과 고향 통영의 연관성에 대한 것 이었다.

김형근 화백은 “내 몸에 흐르는 혈관 속에는 통영의 혼이 있다. 심지어 내 말투에도 내 이름에도, 모든 것이 다 통영이다. 저는 고향에서 고향을 지키며 살고 싶었다”

순간 짧은 시간 침묵이 흘렀으며, 탄식과 함께 고개숙인 화백의 눈에는 눈물이 따라 흘렀다.

떨리는 목소리로 김 화백은 “저는 창작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최선을 다한다. 절제와 철저한 자기 책임과 온 힘을 다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을 죽는 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형근의 예술, 그림 속에는 나의 정신세계가 담겨 있다. 나의 혼, 말투, 눈, 정신이 창작의 근원이며 이것이 곧 예술품이자 그것은 바로 나다. 저는 항상 고향을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럼 모두가 궁금해 하는 김 화백 그림 속 여인상은 과연 누구일까.

“사람들은 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을 매번 한다. 나는 돈을 내고 모델을 쓴 적이 없다. 간혹 집사람을 그렸고, 대부분 딸을 자주 그린다. 한 사람을 모델로 그리면 그 사람이 계속 똑같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모습에 변화를 준다. 앞으로 작품에 어떤 여성을 그릴 것인지 그것은 지금 결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1970년도 대통령상을 받은 과녁 작품에 대한 질문도 줄을 이었다.

김 화백은 “제가 과녁을 그렸을 때 남망산에 과녁이 있었다. 열무정 과녁이 붉은색이었는데 일장기와 비슷한 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검은색을 섞었다. 과녁에는 총 3개의 화살이 박혀있다. 화살은 같은 장소에서 쐈는데 화살이 꽂힌 모습은 다 다르다. 과녁도 화살도 영원하다. 과녁은 내 나라 정신이고 내 민족의 정신이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날 김 화백과 평생을 동행한 부인 이금복(88) 여사에게도 질문이 쏟아졌다.

김 화백과 이 여사의 첫 만남과 부인의 헌신적인 내조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었다.

김 화백과 부인은 6.25 한국전쟁 때 처음 만났다. 당시 김형근 화백은 군인의 신분이었고, 함경남도 출신의 부인은 서울로 온 수학여행 중에 전쟁이 발발, 통영으로 피난을 오게 됐다. 김형근 화백의 친한 누이의 소개로 둘은 만났다. 그리고 첫 만남에 인연이 시작됐다.

여사는 “당시 선생님(김형근 화백)은 육군 소위였다. 몇 번 만나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겼다. 선생님이 예술을 하시다 보니 많이 예민했기 때문에 정신적인 부담을 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선생님께서 그림을 그리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키우고 생활하는 것은 책임지겠다고 생각했다”며 “예술가의 아내는 고달프기도 했지만 그것을 극복했고 오늘날 이 영광이 이제 저에게 돌아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사의 유쾌한 입담은 청중들의 웃음과 큰 박수를 불렀다.

김 화백은 “집사람이 결혼생활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 나를 도와줬다. 생각해보면 가장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공예품을 생산하고 팔아서 6남매를 키웠다. 이 자리를 빌어 집사람에게 감사함과 사랑을 전한다”고 부인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은백색의 화가로도 불리는 김 화백은 1958년 한겨울 죽음의 경험을 계기로 회화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경험담을 밝혔다. 화가의 죽음의 경험이 곧 은백색 배경에 독특한 정물 배치법을 탄생시킨 것이다.

1958년 까닭모를 고열로 앓아 눕게 된 김 화백은 병원으로 이송, 죽음의 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의사의 강력한 주사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더욱 악화됐다. 하지만 사나운 폭풍이 지난 뒤 조용함과 평온이 찾아왔다. 그것은 죽음의 세계. 모든 것이 은백으로 가득한 미지의 나라에서는 언어와 문자만을 감지할 수 있는 황홀한 곳이었다고 기억을 회생했다. 얼음 속 27시간 만에 다시 살아난 김형근 화백은 죽음을 경험하고 은백색을 무한히 펼쳐나가는 것을 작품에 반영했다.

노 화가의 사모곡(思母曲)은 끝이 없었다. 통영을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는 김 화백은 내년 통영으로 반드시 돌아온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전시를 하면 좋겠지만 앞으로 전시 계획은 없다. 큰 딸도 화가인데 아버지 흔적을 통영에 꼭 남겨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통영에서의 전시계획은 예전부터 생각해오고 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기회가 된다면 고향인 통영에서도 전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12년간 애써온 김형근미술관 건립이 구순을 바라보는 노 화가와 가족 모두의 꿈이다.

김 화백은 “참말로 참말로 내 살던 통영에 미술관을 건립, 통영의 예술성을 펼쳐 보이고 싶고, 예술의 고장 통영의 명성을 걸 맞는 세계적 명소를 만드는 것이 내 마지막 소원이다. 내 예술 영감의 원천인 통영에 화답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고백했다.

남망산 얕은 언덕아래 목련꽃이 아름다운 김형근 예술가의 집에 그의 혼을 담은 미술관이 반드시 건립, 이 아름다운 간담회가 다시 열리는 것을 상상해 본다.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