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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선생 추모10주기 기념 백일장 최우수작

기사승인 2018.05.11  11: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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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일반부 운문 산문 통합 최우수상 - 최동욱 <경남 진주시 평거동>

시제: 뚜껑

항상 그렇게 습관처럼 뚜껑을 덮고야 마는 것이었다.

뜨거운 열기에 복받쳐 겉으로 드러내고 싶은 열망을, 그 끓어 넘치는 것을 억지로 닫아두고야 만다. 외부를 향하는 태도 역시 그렇다. 한 톨의 이물질도 냄비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 세계와 차단 된 채 그 안으로부터의 생각에만 골몰하다. 그러니 사상은 넓어질 수 없고 아무리 높은 점의 온도에 도달하더라도 단지 그 안, 좁은 세계의 최고점 밖에 도달하지 못한다. 주변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허락하지 못하고, 그 안으로부터 넘치는 것 역시 억지로 억제하려고 한다. 뚜껑은 보수적이다.

가만히 보면 세상은 보이지 않은 뚜껑으로 닫혀 있다. 생각이나 사상이 넘쳐흐르는 것을 절대 지켜보지 못하고 비상식적이라 치부하며 강제성을 발휘해서 그것을 억눌러 버린다. 또 타인의 생각이나 사상을 자연스레 받아들이지 도 못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면서 모든 가능성을, 모든 진화를 애초부터 거부해버리다.

삶은 욕망으로부터 기인한다. 돈에 대한 욕망으로 타인의 물건을 훔치고 잘못된 성욕에 대한 욕망으로 성범죄를 저지른다. 이런 잘못된 욕망을 제어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사회의 뚜껑이다. 이런 잘못된 욕망을 제어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사회의 뚜껑이다.

그리고 이른바 그 “뚜껑”이 열려 버렸을 때 수많은 사회의 흠결들이 발생한다. 이 세상의 뚜껑은 꼭 필요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한 편으로는 너무 꽉 닫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유로운 생각들이 날아다니기에 뚜껑으로 닫힌 세상은 좁은 것이 아닐까. 무작위로 이종교배 되어 세상에 필요한 잡종들이 태어나는 것을 뚜껑으로 가려진 세상이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과 부대끼며 삶을 지내다 보면 수많은 뚜껑들이 사람들로부터 나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만들어진다.

그것을 더 꽉 조일 것인지. 느슨하게 반 쯤 풀어 놓을 것 인지, 자유롭게 열어 놓을지 정하는 것은 결국 나와 우리의 몫이다. 꼭 필요한 뚜껑도 많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에는 뚜껑이 없는 냄비들도 많이 있다. 모든 냄비에 뚜껑을 달아놓을 필요도 없다. 닫혀있는 뚜껑을 열어 놓는다고 해서 세상이 뒤집힐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고작 가스레인지가 조금 더럽혀지는 것뿐이다. 닦아 낼 수 있으니 너무 겁낼 필요는 없다. 단지 그 뿐이다.

 

고등부 산문 최우수상 - 고양예술고등학교 1학년 박승희

시제: 신발

내가 태어나 처음 신은 신발은 내 첫 울음보다 훨씬 빨리 세상에 나와 있었다. 지금 내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앙증맞은 크기의 신발. 2002년의 나를 증명해 주는 나의 첫 신발은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잉태되고 여섯 달이 지나 만들어졌다. 튼튼하지만 보드라운 흰색 가죽 조각들과 간단하지만 촘촘한 바느질로 가죽에 박혀 조각조각을 이어주는 하늘색 실, 그 신발을 만든 것은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나의 성장일기”를 써오라는 숙제를 받은 적이 있다. 문구사에서 파는 1500원짜리 그림 일기장에 뱃속에 있던 시절부터, 유년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사건을 사진과 함께 나열하는 것이었다. 덧붙여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까지 하였다.

지금의 나나 초등학교 4학년 때의 나나 태아기를 비롯한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은 기억하지 못했으므로 나는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찾아가게 되었다. 부모님은 내가 기억할 수 없는 내 모습까지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니까.

나는 그때 처음 내 첫 신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신발을 꺼낸 것과 신발에 대한 얘기를 해 준 분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얼마나 열심히 이 신발을 만들었는지를 말씀해 주셨다. 시장에 가서 가죽을 사 오시고 실의 색을 고르고 바느질 연습을 하고, 아버지는 바느질을 잘하는 분이셨고, 그 시절에도 능숙한 솜씨를 보였으나 무엇이 불안했는지 끊임없이 실과 바늘을 놀렸다고 하셨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내 첫 신발을 만들기 위해 실 한 타래를 다썼다고 한다.

어머니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과거를 추억하고 내가 그것을 열심히 듣는 그 자리에 아버지는 없었다. 그때는 평일의 낮이었으니까.

아버지는 일을 해야만 했었다. 만약 그 자리에 아버지가 있었다면 신발을 꺼내고 그 이야기를 해 주셨을 것이다. 어머니가 치는 맞장구에서 얻는 정보가 더 많았을 테지만.

아버지는 신발만 만든 것이 아니었다. 머지않아 태어날 아이에게 편지도 썼다. 쑥쑥 자라나 자신만큼 키가 커질지도 모르는, 어엿한 어른이 된 아이를 생각하면서.

나는 그 편지의 내용을 아직 모른다. 나는 아직 어엿한 어른이 되지 못했으니까. 어머니는 언젠가 때가 되면 아버지가 그 편지를 내게 전해 줄 거라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해 주신 모든 이야기를 세 줄로 요약해 “나의 성장일기”에 적었다.

내 첫 신발은 깨끗했고 깨끗하고 깨끗할 것이다. 내 첫 신발은 흰색임에도 불구하고 때가 별로 타지 않았는데, 그것은 내가 그 신발을 몇 번 신지 않았기 때문이다. 걸음을 떼고 세 번 정도 신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내게 신발을 그 정도만 신기고 편지와 함께 작은 상자에 보관하셨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아버지가 왜 그러셨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세 번 신길 거면 왜 만들었나 싶었다. 지금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말로 표현 할 수는 없지만,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처음을 기억하는 마음, 미래를 축복하는 마음,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 아버지는 그런 마음으로 내 첫 신발을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고등부 운문 최우수상 - 부산분포고등학교 3학년 남소원

시제: 신발

오래된 나무의 뿌리처럼

아버지의 발 끝에 뿌리 내린 신발

사계절의 땀이 녹아내려

빛이 바래고 얼룩덜룩 물들어도

한 그루의 나무 밑둥처럼

오롯이 서 있는 그루터기

이른 새벽 별빛을 담아서

발걸음을 옮기면

신발에선 바람소리가 들렸다

한결같은 하루를 이겨내고

돌아오는 아버지의 가슴엔

활짝 핀 가족이 잇었다.

터벅터벅 골목에 들리는 발소리에

대문을 열어젖히면

아버지의 신발이 안부처럼 들어선다

벗어놓은 신발이 단잠을 자면

오래된 나무의 뿌리가 한 뼘 더 자란다.

 

중등부 운문 최우수상 - 둔덕중학교 2학년 정지윤

시제: 신발

아빠의 발에는

굳은살이 박혀 있다.

가장으로서 책임감에

삶의 무게에 짓눌려

두껍고 단단한

신발 속에 갇혀 있다.

아빠의 발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두껍고 단단한

신발 속에 갇혀 있을 것이다

언제인가 내가

아빠의 두껍고 단단한 신발을

꼭 벗겨 드리고 싶다

 

중등부 산문 최우수상 - 통영중앙중학교 3학년 김다연

시제: 신발

나에게 “신발”이라 함은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떠오르곤 한다. 그만큼 네게 소중한 추억이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의 야무진 성격을 또 닮아선지 외할머니는 유독 나를 매우 아끼셨다. 엄마가 없을 때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들려 주셨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런 외할머니는 주말마다 밭에서 캔 나물거리들을 챙겨 장에 나가셨다. 나이가 드셔서 허리가 굽었음에도 불구하고 외할머니 댁을 갈 때면 밭에서 허리를 구부린 채로 우리에게 “왔나” 라는 인사로 반겨주셨다.

장거리를 딸기 고무대야, 사투리가 나에게 더 익숙해서 소위 말하는 “딸기다라이”에 담아 놓고 쭈그려 시장 한 가운데 여러 할머니 분들 사이에 우리 외할머니는 앉아 계셨다.

“이것 좀 사이소” 하고 말이다. 그런 외할머니를 처음 본 나는 조금이라도 장거리를 팔아서 도움이 되고자 했던 외할머니의 마음을 알았던 걸까, 장거리를 다 팔았건, 팔지 못했건 나는 우리 집에 오셨던 외할머니를 마중 나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북신시장이 된 거북시장이나 서호시장에서 무전동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내리시던 외할머니의 낡고 허름한 그 “신발”. 나는 아직도 허름한 신발을 신고 버스에서 내리던 외할머니가의 따뜻한 미소가 그립다.

허름한 신발을 신고 다니시던 외할머니는 손자. 손녀들에게 용돈을 쥐어 주시기 위해 허리가 굽도록 장거리를 해 가셨다. 지금은 비록 외할머니에 대해 많이 그리워하고 있지만, 우리를 위해 허름한 “신발”을 신으면 시장을 나가셨던 외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돈을 벌게 되면 할머니께 예쁜 신발을 꼭 사드려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끝내 나의 바람은 이룰 수 없었다.

외할머니는 끝내 돌아가시게 된 것이다. 지금은 그저 외할머니에 대한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아직도 엄마와 함께 시장을 가면 장거리를 팔기 위하여 앉아 있는 할머니들을 보면 우리 외할머니가 앉아 있을 것만 같아서 자꾸 눈길이 간다.

나는 외할머니의 제사 때 해바라기 꽃 들 사이에서 웃고 있는 사진을 볼 때면, ‘있을 때 더 잘 해 드릴 걸’... 이렇게 보고 싶은데...‘하고 그리워한다. 나에게 “신발”이란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더 좋은 신발을 사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한 마음, 따뜻한 사랑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내 할머니, 보고 싶은 내 할머니, 앞으로도 그리울 내 할머니.

 

 

 

 

 

 

한산신문 han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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