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안에 무얼 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통영 시민과 관광객들의 뜻이 확인되었다("제128회 통영, 질문하다" 참조).

74.8%의 사람들이 강구안 친수시설 공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통영시민사회단체연대에서 조사, 발표한 내용이다.

강구안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사실 강구안이 어떤 모습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통영 시민과 강구안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이다. 마치 한 사람이 홀로 인간이 될 수 없듯이 말이다. '인간(人間)'이란 사람 사이를 말하는 것이니,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물리적 공간으로서 강구안을 재개발하거나 보존하는 것보다 시민들과의 관계를 아름답고 지속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꾸어가는 게 백 배는 중요하다. 소위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진리는 여기서도 통한다.

강구안 친수시설 사업에 있어 항만청이나 중앙정부 부처보다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앙 부처에서 이쁘고 실용적인 강구안을 만들 수는 있어도, 강구안과 주민들의 관계를 아름답게 가꾸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강구안이 시민과 맺는 관계가 관광객과 맺는 관계보다 훨씬 중요하다. 관광객이 없어도 강구안은 존재하지만, 주민이 없으면 강구안은 강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광미항' 만들기보다 '시민이 참여하는 강구안' 만들기가 중요하다.

강구안은 임진왜란 이후 삼백여 년 동안 군항의 역할을 했다. 조선 제일의 군사도시였던 삼도수군통제영의 핵심은 객사인 세병관이 아니라 전선들이 정박해있는 선소(船所)였다. 강구안이 바로 통영 역사의 모태라는 얘기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강구안이 남해안 해상교통로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정기 기선이 드나들며 수많은 만남과 이별의 변주곡을 빚었고, 이는 <김약국의 딸들>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 작품들의 배경 또는 모티브가 되었다. 충무김밥의 산실인 강구안은, 가수 조용필의 첫 히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원곡이었던 "돌아와요 충무항에"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동시에 강구안은 통영이 우리나라 수산업 일번지 역할을 하는 동안 통영의 심장 역할을 해왔다. 어선이 강구안을 드나드는 모습은 심장에서 온몸으로 피가 뿜어져 나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모습이 지금의 강구안의 정체성이다.

국내에서도 거의 드물게 통영은 시내 한가운데에 바다가 쑤욱 들어와 있다. 게다가 어선이 안방까지 드나드는 진풍경에 통영 시민들의 허파에선 바다 냄새가 나고, 관광객들은 설렌 꿈을 꾸며 통영을 찾는다.

이제 다시 강구안이 들려주는 '내일의 이야기'를 고민할 때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들은 지방자치제도를 채택하고 분권과 주민 참여를 강화해왔다. 지자체가 나서서 여론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시민들이 우리 동네 삶터 만들기를 주도하는 것은, 살기 좋은 통영 만들기의 시작이요 끝이다.

새로운 삼백 년을 생각하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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