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기고문 '빛나는 유산'이란 글에서 필자는 윤이상 이름 찾기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윤이상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선생께 드릴 가장 큰 선물은 살아생전 선생께서 그렇게도 오고 싶어 하시던 고향 땅에 선생을 모시고 오는 일이며 음악당의 이름 문제는 시민적 합의만 있으면 오늘이라도 당장 변경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7월 13일 김동진 통영 시장은 그의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2008년도 예산 편성 지침에 (국비를 지원하는) 어떤 기념관이나 음악당이든 사람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지침이 있었다.'(한남일보, 2017.07.13)라고 발언을 하였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2008년도는 필자가 시장이었다. 음악당 건립에 관해서는 정부 예산 확보에서부터 설계까지 필자가 주관하였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보다 필자가 정확히 알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당초 음악당의 이름은 윤이상 음악당이었으나 어떤 사정에 의해서 윤이상 이름이 빠진 것이지 정부의 예산 편성 지침에 의해서 바꿔진 것이 아니다.

예산 편성 지침이라 하는 것은 국가의 다음 해의 예산 편성의 기본 방향, 중점목표 등을 제시하는 문서로서 국내외 경제전망이나 재정 운용 방향 등 굵직굵직한 국가적 사항을 지시하는 문서이지 시시콜콜한 사항을 기록하는 문서가 아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도 그런 지침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유관순 기념관, 안중근 기념관 등을 건립하는데 유관순이나 안중근의 이름을 뺀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김 시장이 왜 그런 엉뚱한 발언을 하였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법적으로 윤이상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가. 이 또한 윤이상 지우기의 깊은 뜻이 있는 것인가. 그래서 황금파도 회원들이 그 말에 넘어가서 음악당 자체의 이름을 바꾸지 못하고 메인 홀이라도 윤이상의 이름을 넣자고 한 것인가?

정부 기타 타 기관에 건의할 필요가 없이 우리 시민들이 합의(시 의회의 동의)하여 오늘이라도 명칭을 바꾸면 되는 일이다.

필자는 다음과 같이 제안해 본다.

'통영 국제음악당'을 '윤이상 음악당'으로,
'메인 홀'은 '평화의 홀'로,
'도천테마파크'는 '윤이상 기념공원'으로―

메인 홀을 '평화의 홀'로 하자는 것은 선생께서 남북이 서로 화해하고, 평화 통일을 이루기를 갈망했던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함이다.

이름변경에 대해서 황금파도 여러분들의 노력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잘못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과거 마산시에서 이은상 기념관, 조두남 음악관을 지었으나 마산시의회에서 두 분을 모두 친일로 몰아 그 이름들을 붙이지 못하게 하여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산문학관, 마산음악관이란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선생에 대한 오해를 풀어드리는 일이다. 아직도 많은 통영 시민과 대한민국 국민들은 윤이상 선생을 북한의 문화 공작원으로 보고 두렵고 무서운 사건, 거론하기 싫은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되어있다.

'SBS 일요스페셜', 'KBS의 인물현대사', 루이제 린저의 '상처받은 용', 이수자 여사의 '내 남편 윤이상'은 윤이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황금파도 여러분들께서 이 자료들을 공부하고 요약 정돈하여 시민들과 시의원들께 알려주길 바란다.

이참에 음악당의 예산 확보 과정과 명칭 변경의 경위를 밝힌다. 2004년경 세계적 지휘자 로젠 마린이 지휘하는 뉴욕 필이 통영에서 공연을 할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연말이 되어가자 뉴욕 필의 노조 대표들이 사전 답사로 통영을 방문하였다.

전문 음악당이 아닌 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할 수 없다 하여 그 계획은 취소되고 말았다.

명색이 세계적 음악 축제를 한답시고 전문 음악당이 없다는 것은 통영시뿐만 아니라 국가적 망신인 것이다.

당시 기획재정부의 변양균 장관에게 국비 예산 신청을 하였더니 변 장관은 반드시 '윤이상 음악당'이란 이름으로 예산 신청을 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 이유는 500억 원이나 되는 막대한 정부 예산이 지원되는데 통영 국제음악당이란 지역의 이름으로는 명분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여 "대한민국이 문화예술 분야에서 세계를 향하여 내어놓을 수 있는 이름은 윤이상과 백남준뿐입니다. 따라서 윤이상 이름을 붙여야 국비 예산을 지원할 수가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윤이상이란 이름 하나야말로 국가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는 명분이 있다 하였다.

그런데 선생의 유족들은 윤이상이란 이름을 못 쓰게 하고 있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마침 2005년은 윤이상 서거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10주기 기념행사가 평양에서 열리고 우리 쪽에서도 MBC TV를 위시해서 60여 명의 기자단들이 평양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 일의 주관은 윤이상 평화재단이 하였다.

필자는 평화재단에 부탁하여 동행을 하였다. 목적은 이름을 따기 위해서였다.

첫날 환영 만찬 자리에서 필자는 이수자 여사 바로 옆에 앉게 되었다.

"이름을 내어주십시오,"

"못 내준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간첩 행위를 한 적이 없는데 남편을 간첩으로 몰아 검찰에서는 사형 구형을 하지 않았습니까. 한국 정부에서 사과하지 않는 한 이름을 쓸 수 없습니다.

당신은 유족인 저의 허락도 없이 윤이상 국제 콩쿠르를 만들어 국제적 행사를 하고 있는데 그것도 중단하십시오"

혹 떼려다 혹을 더 붙인 격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름을 내어주겠습니까?"

"대한민국 정부에서 윤이상 음악제, 윤이상 콩쿠르를 한다면 내어 주겠습니다."

더욱 난감해졌다.

이럴 때는 강하게 공격하는 것이 낫다.

"국가와 정부가 같은 것입니까?"

"?"

"국가와 정부는 다른 것입니다. 국가는 영원하여도 정부는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선생을 핍박한 것은 국가가 아니고 정부였습니다. 그런 영원성이 없는 정부가 윤이상 이름을 따서 행사를 하면 이름을 내어주겠다 하시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정부는 윤이상을 버렸을지라도 국가는 물론 고향인 우리 통영은 윤이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순수한 것입니다. 이름을 내어주십시오!"

이수자 여사는 한참 동안 필자를 빤히 쳐다보시더니, MBC 카메라를 부르고 필자의 손을 잡더니

"이름을 내어주겠습니다. 사진을 찍으십시오."

이렇게 해서 이름을 따게 되었고 음악당 예산 500억 원이 확보되었다. 더 나아가서 필자는 1,000억 원의 예산을 더 확보하여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를 한 윤이상 음악당을 지으려고 하였다. 이는 현대 음악의 세계적 거장과 현대 건축계의 세계적 거장이 만나는 것으로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문화유산이 탄생되는 일이요 우리 통영은 이로 인해 하루아침에 일약 세계적 문화·예술·관광 도시가 되는 것이다.

김태호 경남 지사를 설득하여 500억 원의 예산을 확보하였고, 당시 통영의 명예시민인 이명박 대통령께 나머지 예산을 부탁하고자 할 때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극우파 인사들이 조선일보 1면에 "국가 예산으로 민족의 반역자 윤이상을 기념하는 음악당이 웬 말이냐!" 하는 광고가 나온 것이다.

문광부에서는 '예산을 반납하라'라는 압박이 들어오고, ○○기관에서는 필자를 찾아오고…….

이때,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월간 조선의 조갑제라 생각하여 생면부지의 조갑제를 만나서 절박한 사정을 호소하였다.

"로젠 마린이 이끄는 뉴욕 필이 통영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전문 음악당이 없어 취소되었다. 정말 절박하다. 도와 달라. 그 대신 윤이상 이름을 빼겠다"

그렇게 해서 윤이상의 이름이 빠지게 되었고 예산은 살아남게 되었던 것이다. 대화를 나눠보니 조갑제 선생은 매우 합리적이고 젠틀한 사람이었다. 늦었지만 그에게 감사한다. 우리는 살아생전에는 고향을 들르지 않겠다던 박경리 선생을 모시고 와서 그의 기념관과 공원 묘소를 조성해주었다.

이제는 윤이상 선생을 그렇게 하자. 나아가서 청마 유치환 선생, 동랑 유치진 선생도 그렇게 해서 위대한 우리 고장 예술가들의 보금자리를 만들도록 하자.

선생을 모셔오기 전에 해외에서 돌아오지 못한 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진혼곡을 연주하자. 대대적인 남해안 별신굿으로 선생의 영혼을 부르자. 남해안 별신굿, 인간문화재 정영만 씨의 그 아름다운 통영노래로 선생의 혼을 위로하자. 선생의 현대 음악은 정영만 씨의 그 통영노래에서 발원한 것이 아닌가. 선생께서  Das ist mein Ganzes!(통영은 나의 전부!)라 하시며 정말 기뻐하실 것이 눈에 선하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던 정약용을 두고 정일근 시인은 이렇게 읊었다.

'……강진의 밤은 너무 깊고 어둡구나.
아득하여라, 정말 아득하여라.
처음도 끝도 찾을 수 없는 미명의 저편은 나의 눈물인가 무덤인가…….'

조국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던 선생의 심정과 행적을 읊은 것 같아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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