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고, 광도면 이지수

1. <한국의 미 특강>과의 만남은
귀뚜라미가 보일러를 돌리기 전 어느 가을 밤, 봄날의책방에서 첫 구입한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를 뒷좌석에 고이 모시고 부지런히 엑셀을 밟았습니다. 삼십분 늦게 북콘서트 행사장 윤이상기념공원에 도착했지요. 중간 휴식이 있고 드디어 낭독 차례가 되었습니다.

책의 구절을 의자에 앉아 낭독하느라 정수리를 보이는 다른 참가자들과는 다른 형태의 진행을 펼치는 이가 있었으니 한산신문 성병원 편집국장님이었습니다. 하회탈 눈매의 중년 남성인 그는 마이크를 잡고 당당히 서서 생뚱맞게도 김홍도의 씨름을 화면에 걸어 그림 감상법을 논하셨습니다. 한지에 검은색 선으로만 표현된 그림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많은 스토리가 숨쉬고 있었습니다. 부분 부분 파헤쳐 펼쳐지는 반전있는 편집국장님의 설명이 너무 재밌어 확 빨려들어갔지요. 그렇게 내 인생에도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시작되었습니다.

행사 후 오주석님 책의 강렬한 첫인상이 잊혀질 쯤 어느 금요일 봄날의 책방으로 향했습니다. 카운터 근처에 진열되어 있던 책 중 마침 낯이 익은 책을 덥석 집었더랬죠. 그 책은 바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이만오천원이라는 고가였습니다. 가격에 기가 팍 죽던 저는 없던 지조를 발휘, 하필 수중에 있었던 현금을 당당히 흔들며 계산해달라 외쳤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표지에 있는 호랑이와 눈싸움 한판하고 교양있는 엄마 코스프레를 위해 책꽂이로 고이 모셨습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책의 존재를 한산신문 주관 독서 감상문 공모에 나온 목록에서 다시금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 책 첫 만남의 장소 윤이상 기념관 옆에는 인간문화재 추용호 소반장 장인이 주거공간이자 공방인 자택에서 쫓겨나 천막에서 생활하며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아끼고 보존하는 데 마땅히 힘써야 할 우리나라 전통이 천대받는 암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본 저는 참담한 심정을 어찌할 바 몰랐습니다. 조선시대 통제영 저잣거리 소반 공방모습을 유일하게 간직한 건물은 허물어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보상도 끝났고 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 시가 승소했으므로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주장을 펼치는 통영시는 도로설정 계획 앞에 당당했습니다.

어처구니 없지만 많은 이들은 시대흐름이라며 체념하고 방관했습니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끊임없이 저를 짓눌러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화병까지는 아니지만 뜨겁게 타들어가는 심정을 책을 읽으며 달래고 싶었습니다.

2. 오주석 선생님 지금 만나러 갑니다
공방철거소식을 접하고 과연 우리에게 전통이란 무엇인가 의문이 들어 불현듯 오주석 선생님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립할지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단원 김홍도는 진실한 삶, 비근한 삶을 많이 그렸잖아요. 생활의 모든 것을 예술로 승화 시켜 그 시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돕고 겨레의 자존감을 높여 준 것이 아닐까 짐작해 봤는데요. 우리 시대의 사람들도 자신의 삶의 아름다움에 눈뜨고 문화의 꽃이 피어나면 좋겠는데 정신 속속들이 서구 미학에 대한 동경으로 물들어 있고 정치, 군사, 경제적, 문화적 종속으로 우리 고유의 혼은 어김없이 상처투성입니다.

자기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 그것은 장차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자신감으로 연결된다며 어느 분야든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해서 큰 꿈을 이루길 바란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근데 너무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추용호 인간문화재 공방은 물건들은 모두 압수, 자택 입구가 폐쇄되고, 주거공간이자 작업실을 빼앗긴 채 이 무더위 속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있거든요. 문화재 파괴는 일제강점기, 6.25 전쟁때만 일어났다는 생각은 착각이었더라구요. 마지막 남은 공방터를 보존하기는 커녕 일본 사람이 조직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조선의 혼과 흡사한 조선 호랑이를 멸종시킨 것과 같이 송두리째 허물려는 속셈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120년 된 가옥을 도로 만든다고 허문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됩니다. 이번 사건이 아니었다면 전통을 이어가느라 한 평생을 바치며 고생하시는 문화인들의 고초를 계속 몰랐을 거예요. 이제라도 알게되어 다행이지만 죄책감으로 맘이 무겁습니다. 왠지 오주석 선생님께 하소연하면서 양심의 가책도 덜고 한국인의 긍지도 되살리고 싶습니다.

한편으로 저는 이번 일로 큰 보물이 꼭 꼭 숨어 있었단 걸 널리 알리게 되어 기쁘기도 합니다. 게다가 추웅동 장인이 옆집에 살았던 고모부인 윤이상 선생 아버지로 부터 소반제작 기술을 배웠다는 사실 또한 너무 놀라웠습니다.

하여튼 시민들의 관심이 모이자 시에서 공방 보존을 고려하는 제스처를 취해 잠시나마 안도가 됩니다. 저는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모두 한마음으로 움직이던 붉은 악마의 열정이 너무 그립습니다. 선생님도 그렇다고요? 책을 펴내며 부분 읽었을 때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읽고 위안이 많이 되었습니다.

특히 "문화,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보람, 특히 지금 이땅에 사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우리인 까닭, 바로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한 나라의 문화는 빼어난 사람들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문화인 예술가들이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해도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이란 결국 그것의 터전에 낳고 함께 즐기는 전체 국민의 눈높이만큼만 올라설 수 있습니다"에 이거다 싶어 너무 반가웠습니다.

선생님의 강의를 보고 들으며 조상들의 문화 예술 수준과 인간과 자연에 대한 너그러운 심성을 알 수 있어 기뻤구요. 옛 그림을 공부하면 조상들이 이룩해낸 문화와 예술이 참으로 훌륭하고 격조 높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자부심에 행복합니다.

그런데 실생활에선 박물관을 일부러 가지 않는 이상 한국화를 접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지역 전시회를 가도 유화로 그린 서양화가 대부분이예요. 게다가 서양화 전시회는 멀리까지 찾아가서 심지어 해외가서도 돈주고 전시회도 보고 열심인데 말입니다. 금전적 투자가치가 낮으면 사양길에 접어드는 것이 경제 시스템에서 당연한 이치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우리 것의 가치가 너무 인정받지 못하는 풍토가 너무 안타깝습니다.

선생님 책 첫째 이야기 '옛 그림 감상의 두 원칙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낀다'에서 익숙한 가로쓰기, 좌상 우화가 서양식 시선이라고 하셔 깜짝 놀랐습니다. 실은 얼마전 남망산 시민문화회관에서 통영 먹벗회원전 전시를 관람했었는데요. 한자도 모르고 무엇보다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쓰다듬듯이 감상하는 법을 몰라 서예와 그림을 제대로 못 보고 쓱 지나치고 말았다는 걸 뒤늦게 깨치고 있습니다.

어찌 시선의 방향까지 싹둑 절단되는 아픔을 겪게 된걸까요. 서구중심적 사고가 주류인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자기 문화를 해독할 수 없을 지경인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미군들이 일본과 한국을 왕래하느라 서울시간을 일본 표준시로 바꿔 32분 빠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끔찍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학창시절 지각으로 체벌에 시달렸다는게 왠지 억울해지기까지 합니다.

먹고 살기 바쁜데 무슨 예술 작품에 신경쓰나 하며 마음을 닫아 시이불견 보기는 보는데 보이지 않고, 청이불문 듣기는 듣는데 들리지 않는 건성으로 살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인의 긍지 잃지 않고 우리 문화를 사랑하며 보존하는데 힘쓰겠습니다.

선조들의 초상화에서 배울 수 있듯이 외면이 아닌 정신을 가꾸며, 있는 그대로 진실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생존하고 있는 동안 한국의 얼을 지켜내기 위해 애써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건강하고 풍성하게 형성해보고 싶습니다. 그럼으로써 후손들이 문화적 열등감으로 아파할 일 없도록 힘쓰겠습니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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